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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21세 /  조선시대
허희(喜)

파조명허희(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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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역재공 후손들의 시제 봉행 모습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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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역재공 후손들이 벌초를 하고 있는 모습 (학역재공파종중 묘역)

학역재공파(學易齋公派) 약사

학역재공파는 동애공 허자(磁)의 종손인 21세 학역재공(學易齋公) 허희(喜)를 파조로 모시는 문중이다. 학역재공은 총명하고 수려하여 아버지 송호공 허강(橿)이 사랑하고 아끼며 행복하다는 뜻으로 이름을 희(喜)라 지었는데 안타깝게도 36세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공(公)의 아드님 세현공(世顯公) 허면(冕: 동애공의 증손)도 26세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시니 배위인 경주안씨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피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충청남도 당진(唐津)으로 의지할 곳을 찾아가게 됩니다.

경주안씨는 그곳에서 왜구를 치기 위해 남정(南征: 남쪽 지방을 무력으로 침)하고 있는 병마사(兵馬使) 한천공(寒泉公) 허잠(潛)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병관(兵館: 군사의 일을 맡아 보던 객사)으로 만나러 갔으나 한천공께서 병관에 계시지 않아 만나지 못한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후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부훤당(負暄堂) 허욱(頊: 훗날 좌의정)이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대왕(宣祖大王)께 동애공 종손의 어려움을 고하니 선조는 동애공의 사손(嗣孫: 대를이을 손자)에게 장원(莊園: 귀족 또는 관료의 사유지)을 내려 살게 해 주고, 또 동애공 허자(磁)의 사당에 제를 지내도록 사제(賜祭: 임금의 특명으로 제사를 내려 주던 일)하니 그 자손들이 그곳 당진을 터전으로 정착하고 세거하게 되었습니다.

학역재공 허희(喜)와 아드님 세현공 허면(冕)의 묘소는 연천 은거당 서쪽 구곡(駒谷: 매지울)에 계셨으나, 1999년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충청남도 당진으로 이장을 모시었습니다. 묘역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항곡리 산 56번지에 학역재공 21세, 허희(喜)를 비롯하여, 22세 허면(冕), 23세 허익(翼), 24세 허전(晉戋), 25세 허병(炳) 다섯 분이 모셔져 있고, 하계 종손가는 당진시 고대면 일원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당진시 정미면 도산리 산 33번지에는 26세 허완(琓), 27세 허곽(金郭), 28세 허제(濟), 29세 허근(山荲) 네 분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모토: 학역재공파종회 모토

  • 회장

    허욱(煜)
    연락처: -

  • 총무

    허욱(煜)
    연락처: -

  • 집성촌

    충청남도 당진

  •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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