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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22세 /  조선시대
허서(舒)

파조명허서(舒)

행직:  영월군수(寧越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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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공파종중 임원진 모습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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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공파 부여문중의 시제봉행 모습 (2015년)

영월공파(寧越公派) 약사

영월공파는 21세 포천현감 허교(喬)의 셋째 아들이자 미수공의 둘째 아우이신 22세 영월군수(寧越郡守) 허서(舒: 영월공)를 파조로 모시는 종중입니다. 영월공께서는 네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첫째 아들 허공과 그 후예들은 연천에서 세거하다가 영남 지방의 청도, 밀양, 창녕 지방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1800년대 말 후손들이 호남 지방으로도 이주하여, 전라남도 승주군 일원에 집성을 이루며 살게 되었습니다. 영월공의 셋째 아들인 영양군수(英陽郡守) 허호(䎁: 영양공)의 후손들은 진주 문중과 감로 문중을 이루었고, 현재 전라북도 전주, 경상남도 진주, 창원 등지에 크게 번성하여 집성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영월공의 막내 아들 허숙(䎘)의 후예들은 충청남도 부여, 청양, 홍성 일대에 퍼져 집성을 이루니 부여 문중이라 부르며 번성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허충(翀)은 영월공의 형 송화공 허의(懿)에게 양자로 보내져 송화공의 뿌리를 잇게 했습니다.

영월공의 묘소는 보(譜: 족보)상으로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현재의 화성시 남양동)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오랜 세월 동안 자손들이 멀리 떨어져 살게됨으로 해서 실전(失傳: 묘지 등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사실을 알 수 없음)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영월공의 10대손이자 32세손인 부여문중의 허찬욱(粲旭) 공이 영월공의 묘소를 수년간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찾아 나선 끝에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장덕리 매바위골에서 공의 묘를 찾았습니다. 보상으로 보면 영월공의 장손 계통의 증손자들 중 두어 분이 영월공 묘역에 묘를 쓴 것으로 보아 묘역 부근에 종손가 후손들이 살면서 산소를 수호해 오다가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멀리 영남 지방으로 이주하여 살게되면서 실전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경기도 남양에 위치한 영월공의 묘소는 그 자리가 음지로 습하고, 또 인근에 살고 있는 후손도 없어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은거당 12대 종손 허찬(燦)의 결심으로 현재는 경기도 연천의 은거당 묘역내로 이장하여 모셔져 있습니다.

영월공 후손들은 종손계의 구례문중을 위시하여 진주문중, 감로문중, 부여문중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모토: 영월공파종회 모토

  • 회장

    허욱(煜)
    연락처: -

  • 총무

    허욱(煜)
    연락처: -

  •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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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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