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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22세 /  조선시대
허순(順)

파조명허순(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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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후 함께 한 조산공 후손들의 모습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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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공 묘소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소재)

조산공파(朝散公派) 약사

조산공파는 미수공의 일곱 형제 중 막내인 22세 조산공(朝散公) 허순(順)을 파조로 모시는 문중으로 후손들은 주로 경상남도 창원과 김해, 부산 지방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조산공께서는 경기도 연천으로부터 경상남도 창원 북면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어떤 연유에서 창원으로 이주하셨는지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추측컨데 아마 둘째 형님이신 송화공 허의(懿)가 병자호란을 피해 경상남도 의령으로 이주하실 때, 함께 이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창원, 사천, 칠원 지방에 별서(별장)들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이 별서를 관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첫째 형님이신 미수공 허목(穆) 또한 10여 년을 이 지방에서 거처하시니 아마도 조산공 또한 별서를 관리하면서 창원 북면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산공은 말년에 창원으로부터 미수공을 뵈러 연천에 오셨다가, 그만 병을 얻어 연천에서 돌아가렸습니다. 공의 묘는 이런 연유로 현재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위치한 형님 숙천공 묘소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관은 그 자리를 일컬어 학이 나래를 펴 품고 있는 형상이라며 길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배위인 청송심씨(靑松沈氏)는 경상남도 창원 북면 두리곡에 묘를 쓰니 후손들은 두분의 선영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조산공을 창원으로 이장 모시어 두 분을 함께 모시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경기도 연천의 숙천공과 조산공께서 잠들어 계시는 곳은 은거당 소유의 산이었는데, 은거당 종손인 11세 혁(䓇)과 당시 차종손이었던 12세 찬(燦)이 미수공의 둘째 아들인 안혁공 문중 등에 나누어 준 것과 같이 숙천공과 조산공 문중에 그 일대의 땅을 기증했습니다.

창원 북면을 세거지로 삼은 조산공 허순(順)의 후손들은 그 일대에서 「허씨마을」을 이루며 살았는데 지난 세월에 비해 후손들의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초 이 마을에 역병이 돌자 이곳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현재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이곳을 중심으로 김해, 부산 등지에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창원 북면 선영에는 조산공의 배위 청송심씨(靑松沈氏)를 비롯하여 23세 허현(翾), 24세 허서(楈), 25세 허수(), 26세 허재(榟), 27세 허담(䃫) 및 그 배위 분들이 계시고, 김해 선영에는 28세 허희(僖) 이후부터 계십니다.


모토: 조산공파종회 모토

  • 회장

    허욱(煜)
    연락처: -

  • 총무

    허욱(煜)
    연락처: -

  • 집성촌

    경상남도 김해, 부산

  •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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